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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양’을 아시나요?

기사승인 2020.11.26  15: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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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인연이란 참 무섭다. 대구 남문시장 언저리 구석진 동네에서 태어난 나는 지금 전주에 위치한 전북제일신문에 글을 쓰고 있다. 고향에서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서울에서 살았고, 인연이 닿아 일본에서도 오래 살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많은 지역을 찾았고 그곳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건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을까, 하늘이 내린 명이었을까.
 
최근 5년 나는 방학 때마다 찾아가는 나라가 있다.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다. 어떤 연유로 그 이름도 생소한 나라를 가느냐고 묻는다면, 이건 내 인연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NGO ‘국경없는 교육가회’ 김기석 대표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겠다.
 
2007년 당시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 재직 중이었던 김기석 교수는 유네스코의 초청으로, 세계 각국에서 아프리카 비정규교육을 전공하는 석학들과 함께 아프리카교육발전협의회(ADEA)의 산하단체가 있는 부르키나파소를 방문했다. 그는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땅을 밟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달러 정도이고, 날로 심각해지는 사막화로 농사지을 땅이 사라지고 있는 서아프리카 내륙의 부르키나파소는 교육마저 뒤처진 나라였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들은 시골의 한 학교를 방문했고, 전교생이 그들을 환영했다. 환영의 뜻으로 학생 대표가 바가지에 담은 물을 내밀었다. 이 나라에서는 손님이 오면 우정과 환영을 이렇게 표시한다. 이 물 하나로 비로소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아프리카에서는 절대로 아무 물이나 마셔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들이라 누구 하나 바가지의 물을 받지 않고 서먹서먹한 공기가 흘렀다. 이때 “죽기야 하겠어”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간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기석 교수였다. 몸을 낮추어서 5살 고사리 손으로 건넨 바가지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아이를 꼭 껴안았다. 이것이 김 교수와 작은 크리스틴과의 인연이었고, 부르키나파소와의 인연이고, 더 나아가 나의 인연이 되었다.
 
김 교수는 크리스틴을 교육입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교육입양’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있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하겠다”는 그의 약속은 크리스틴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부르키나파소는 프랑스와 학제가 같아서 유치원을 포함하고 초?중?고(5-4-3년 과정)이라 우리와 같이 만18세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김 교수의 교육입양은 이 한 아이 만이었겠는가. 이날 교육입양을 약속하자 난데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크리스틴의 쌍둥이 동생 크리스티네였다. 이 자리에서 두 아이의 교육입약이 시작되었고, 해마다 한두 명씩 그 수가 더해졌다.
 
2016년 여름 부르키나파소를 찾았을 때, 크리스틴 부모의 초대를 받았다. 수도 와가두구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2시간은 더 간 거 같다. 어머니가 길 헤매지 말라고 마을 입구까지 오토바이로 마중 나와 있었다. 환영한다고 종이봉지에 담긴 물을 내놓았다. 나는 살짝 뒤로 숨겼는데, 김 교수는 역시 호탕한 웃음을 보이면서 물을 마시고 숙녀가 된 두 아가씨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학교를 졸업하면 크리스틴은 공무원이 되겠다고 했고, 크리스티네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다. 무엇이 되든 “국경없는 교육가회가 하는 일을 너희도 도와야한다”는 말에 그러겠다는 약속을 했다. 잠깐의 만남을 뒤로 하고 일어서자 부모님은 선물이라면서 살아있는 닭 두 마리를 내놓았다. 아무리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로 차에 실어주는 바람에, 귀갓길 내내 퍼덕이는 닭과 함께했다. 그 닭을 어찌 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그 날을 생각하면 마구 웃음이 쏟아진다.


김 교수의 교육입양아 중에는 아주 재미난 아이도 있다. “아버지, 의대 합격했으니 노트북 사주세요”라고 너무 당당하게 말을 해서, “교수님 그런 약속 하셨어요”라고 물었더니 “건방진 놈이네”하고 웃는다. 마냥 좋기만 한 모양이다.
 
나는 ‘아직’ 교육입양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학비를 챙겨야하는 자식이 있으니 아프리카 아이의 학비까지 오지랖을 넓힐 여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데, 어느 날 나도 건방지고 똘똘한 아이의 학비를 위해서 원고료를 챙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전북제일신문 webmaster@jbj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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